
줄거리
이야기는 두 개의 시간대를 오가며 시작된다. 하나는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물리학자 예원제는 홍위병들에 의해 아버지가 무참히 처형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은 환멸을 품은 채 오지의 노동수용소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우연히 비밀 군사 프로젝트인 '홍안 기지'로 발탁되는데, 이는 외계 문명과의 교신을 시도하는 극비 전파 천문학 시설이었다. 오랜 시간 응답 없는 침묵 끝에, 예원제는 마침내 태양을 증폭기 삼아 우주로 쏘아 보낸 신호에 대한 답신을 받는다. 발신자는 평화주의 성향의 외계인 한 명으로, 자신들의 문명에 다시는 응답하지 말라고, 응답하는 순간 그들의 함대가 지구를 침공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인류에게 이미 환멸을 느낀 예원제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지구로 와서 인류를 구원해달라는 답신을 보낸다.
또 다른 시간대는 현재의 영국 옥스퍼드. 한때 같은 연구실에서 동고동락했던 다섯 명의 젊은 과학자, 이른바 '옥스퍼드 파이브'가 주인공이다. 나노 소재를 연구하는 오기, 응용물리학자 진청, 입자물리학자 잭 루니, 생물학자 윌 다우닝, 그리고 이들의 은사였던 물리학자 베라 예(예원제의 딸)가 그 중심에 있다. 어느 날 세계 각지의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연달아 의문의 자살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베라 예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며 다섯 친구는 큰 충격에 빠진다. 동시에 진청과 잭에게는 시야 어디를 보든 정체불명의 숫자가 카운트다운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오직 그들에게만 보이는 환영이었다.
이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형사 다시와 냉철한 정보기관 요원 토마스 웨이드가 수사에 나서고, 두 사람은 죽은 과학자들이 하나같이 'VR 삼체'라는 정체불명의 게임을 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진청이 직접 이 게임에 접속하면서, 그녀는 태양이 세 개인 불안정한 행성에서 문명을 몇 번이고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는 외계 종족 '산티'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산티 문명은 태양 세 개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삼체 문제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난세'와 안정적인 '치세'를 오가며, 그때마다 문명 전체가 몰살과 재건을 반복해온 것이었다. 이들은 결국 예측 불가능한 고향을 버리고, 과거 예원제가 보낸 신호를 따라 지구를 침공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문제는 산티군의 함대가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400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소폰'이라 불리는, 양성자 하나를 고차원으로 펼쳐 만든 초지능 컴퓨터를 지구로 먼저 보내둔 상태였다. 소폰은 인류의 모든 입자가속기 실험을 교란시켜 물리학의 근본적인 발전을 원천 봉쇄하는 동시에, 인류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극 중에서 다섯 친구는 예원제가 이끄는 지구-산티 조직(ETO)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이 조직은 인류에게 환멸을 느낀 이들이 모여 산티의 침공을 오히려 환영하고 돕는 광신 집단이었다. 조직 내부에는 인류의 완전한 멸망을 바라는 '종말론자'와 산티를 구원자로 숭배하는 '구원파', 그리고 침공 이후 자신과 가족의 생존만을 보장받으려는 '생존파'가 뒤섞여 있다.
이야기는 결국 ETO 조직원들이 소폰 관련 핵심 정보와 산티와의 통신 기록이 담긴 서버를 실은 배 '심판의 날'호를 파나마 운하로 이동시키려는 계획을 저지하는 작전으로 향한다. 오기가 개발한 초강력 나노섬유가 실제로 활용되는 이 작전은, 거대한 화물선을 그대로 얇은 실로 잘라내며 배에 타고 있던 인물들을 대거 희생시키는 처참한 결말로 이어진다. 이 작전을 통해 확보한 서버에서는 산티 문명의 실체와, 인류를 "벌레들"이라 조롱하며 경멸하는 통신 기록이 함께 발견되고, 다섯 친구와 인류는 이제 400년 뒤에 닥칠 침공을 대비해야 하는 거대한 싸움의 시작점에 서게 된다.
리뷰
<삼체>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감상은, 원작이 가진 압도적인 스케일의 SF적 상상력을 영상으로 옮기려 한 시도 자체가 상당히 대담했다는 점이다. 태양이 세 개인 행성, 양성자를 고차원으로 접어 만든 슈퍼컴퓨터, 문명 단위의 반복된 절멸과 재건 같은 개념들은 글로 읽을 때도 벅찬 스케일인데,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프로덕션의 완성도는 확실히 인상적이다. 특히 극 중반 진청이 VR 게임 속에서 마주하는 산티 문명의 모습, 그리고 인간 몸을 접었다 펼쳤다 하며 탈수시키는 방식으로 재난에서 살아남는 장면 같은 시각적 상상력은 이 작품이 왜 그렇게 큰 화제를 모았는지 납득하게 만든다.
가장 강렬하게 남는 파트는 역시 예원제의 과거 서사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실제 역사적 비극 속에서 아버지를 잃고, 인류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해가는 예원제의 심리적 붕괴 과정은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밀도 높은 드라마로 꼽을 만하다. 그녀가 인류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절망적으로 사랑하기에 외부의 개입을 갈망하게 되는 그 역설적인 감정선은, 이 작품이 단순한 SF 스펙터클을 넘어 어떤 철학적 무게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다. 현재 시점의 옥스퍼드 다섯 친구 서사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게 느껴졌다. 각 인물의 로맨스나 개인사가 곳곳에 배치되지만, 예원제의 서사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초반 몇 개의 에피소드는 세계관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다 보니 다소 늘어지는 구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즌 마지막을 장식하는 파나마 운하 작전 시퀀스는, 그 잔혹함과 스펙터클을 동시에 잡아낸 이 시리즈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산티 문명이 인류의 발전을 견제하기 위해 보낸 '소폰'이라는 고차원적 초지능 컴퓨터가 너무나도 전능하게 설정됐다는 점이다. 인간의 시각에 개입하여 카운트다운을 띄우는 것 뿐만 아니라 환각을 일으키고, 온갖 전자기기를 해킹하며, CCTV를 정교하게 조작하거나 인공지능을 조작하는 등 인류가 흔적조차 잡을 수 없지만, 인류에게 지대한 해를 끼칠 수 있는, 압도적인 성능으로 설정되어 작품의 몰입에 방해된다.
전반적으로 완벽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하드 SF를 이 정도 스케일로 대중적인 드라마 문법에 녹여낸 시도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원작과의 비교
드라마와 원작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배경과 인물 구성이다. 원작은 예원제와 나노 소재 과학자 왕먀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철저히 중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반면, 드라마는 현재 시점 서사를 영국 옥스퍼드로 옮기고 왕먀오 한 사람이 맡았던 역할을 '옥스퍼드 파이브'라는 다국적 인물 다섯 명으로 나누어 재구성했다. 이는 서구 시청자들의 몰입을 위한 각색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원작이 가진 중국적 특수성, 특히 문화대혁명이라는 배경이 갖는 무게감이 다소 희석됐다는 인상도 준다.
형사 다시 캐릭터도 원작에는 없던 정보기관 요원 토마스 웨이드와 짝을 이루는 콤비로 재구성됐는데, 웨이드는 사실상 원작 2부 <암흑의 숲>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냉혹한 실용주의를 미리 가져와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에 가깝다. 이처럼 드라마는 1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2부, 3부의 개념과 대사를 미리 곳곳에 배치해두는 방식을 택했다. 산티가 인류를 향해 던지는 "너희는 벌레다"라는 대사도 원작에서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사인데, 드라마는 이를 시즌 1 결말부에 앞당겨 배치하며 이야기의 정서적 마침표로 활용한다.
또한 원작 소설은 VR 게임 삼체를 상당히 건조하고 개념적으로 묘사하는 반면, 드라마는 이를 훨씬 화려하고 영화적인 비주얼로 구현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반대로 원작이 가진 특유의 과학적 디테일, 이를테면 소폰이 실제로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 등은 드라마에서 상당 부분 축약되거나 생략됐다. 전체적으로 드라마는 원작의 굵직한 사건과 개념은 충실히 가져오되, 인물 구성과 정서적 강조점을 서구 대중 드라마의 문법에 맞게 상당히 자유롭게 재배치한 각색이라고 볼 수 있다. 원작 팬이라면 이런 변화가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반대로 원작의 방대한 설정을 처음 접하는 시청자에게는 오히려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