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개요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 이후 13년 만에 다시 꺼내 든 첩보 액션물이다.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이 주연을 맡았고, 조인성에게는 <모가디슈>, <밀수>에 이어 류승완 감독과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작품이기도 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얼음처럼 차가운 도시에서 충돌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설 연휴 극장가에 걸리며 명절 대작으로 관객을 맞았고, 개봉 이후 액션 연출과 미장센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평이 이어진 반면, 서사의 밀도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리는 편이다.
줄거리
국정원 요원 조과장(조인성)은 임무를 위해 가족과의 연도 끊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과거 지키지 못한 정보원(휴민트)에 대한 죄책감을 안은 채, 그는 북한산 마약의 한국 반입과 북한·러시아 마피아 간의 마약 거래를 확인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그곳에서 북한 식당 '아리랑'을 운영하는 채선화(신세경)를 만나 그녀를 새로운 정보원으로 포섭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채선화의 약혼자이자 북한 보위성 요원인 박건(박정민)과도 얽히게 된다. 서로 다른 소속과 목적을 가진 세 사람은 각자의 신념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진실도 신뢰도 쉽게 얼어붙는 이 도시에서 예측할 수 없는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리뷰 - 차가운 도시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신념
<휴민트>를 둘러싼 평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지점은 '액션은 확실히 류승완, 조인성'이라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인물들이 처절하게 얻어맞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타격감 있는 액션 연출은 이번에도 건재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 조인성의 오프닝 액션 시퀀스는 여러 평가에서 한국 영화 액션 장면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긴 팔다리를 활용한 조인성의 액션이 단순히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넘어, 과거에 지키지 못한 정보원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려는 속죄의 몸짓처럼 읽힌다는 해석도 눈에 띈다.
연기에 대한 평가 역시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박정민은 냉혹한 보위성 요원이면서도 약혼자 앞에서 무너지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소화하며, 이 영화의 '가장 경이로운 수확'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존재감을 남겼다. 박해준의 악역 연기, 신세경이 극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감도 고르게 호평받는 편이다. 다만 조인성의 경우는 다소 호불호가 갈린다. 인간미 남은 첩보 요원이라는 캐릭터에 특유의 스타성을 잘 활용했다는 평가가 있는 한편, 격하게 대립하는 장면에서도 톤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또박또박 대사를 읊는 연기 패턴이 다소 힘이 빠진 듯 느껴진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가장 아쉬운 지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건 서사의 깊이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스토리보다 캐릭터에 의존하는 연출 방식이 이번에도 두드러지는데, 정의롭고 올곧은 캐릭터가 극 초반부터 후반까지 별다른 변주 없이 이어지다 보니 서사 자체는 다소 뻔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있다. 한 리뷰는 이 영화를 두고 "'베테랑2'가 단순한 척하지만 사실은 복잡한 영화였다면, '휴민트'는 복잡한 척하지만 사실은 단순한 영화"라고 요약하기도 했다. 첩보물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그 이면에는 인간의 품격이라는 다소 묵직한 질문을 던지려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정교한 첩보 스릴러라기보다는 첩보물의 외피를 두른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는 평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주목할 만한 관전 포인트 — 미장센과 연출
이 영화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미덕 중 하나는 블라디보스토크라는 공간을 스크린으로 옮겨온 방식이다. 회색빛으로 가라앉은 도시의 공기, 얼음처럼 서늘한 색감의 미장센은 그 자체로 인물들의 고립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첩보물 특유의 건조하고 냉정한 톤을 공간 연출만으로 설득력 있게 만들어낸 점은 이 영화의 확실한 장점으로 꼽힌다.
액션 연출에서는 조인성과 박정민 두 배우의 액션이 서로 다른 결로 설계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조인성의 액션이 긴 팔다리를 활용한 시원하고 절제된 '타격의 미학'에 가깝다면, 박정민의 액션은 냉혈한처럼 기능하던 인물이 감정 앞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과 맞물려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사운드 디자인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뚜렷해서, 타격감과 총격음이 상당히 강렬하게 체감된다는 반응도 많다.
기획 단계의 배경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류승완 감독은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 국내에서 벌어진 정치적 혼란으로 촬영이 무산될 뻔한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럼에도 "정말 해보고 싶었던 걸 다 해본 느낌"이라며 완성도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말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감독 개인에게도 상당히 각별한 작품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사의 밀도보다는 인물과 분위기, 그리고 액션의 쾌감으로 승부를 보려는 영화인 만큼, 류승완표 액션의 팬이거나 짙은 감정선의 드라마를 선호한다면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이라는 게 공통된 결론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