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유만수(이병헌)는 아내 미리(손예진), 두 아이, 반려견들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만하면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이었지만, 어느 날 회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해고 통보를 받는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에 그의 인생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족을 위해 석 달 안에 반드시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만수는 1년 넘게 마트에서 일하며 면접장을 전전하고, 어렵게 장만한 집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필사적으로 '문 제지'라는 회사에 이력서를 들이밀지만 반장 선출(박희순) 앞에서 굴욕만 당하고 돌아선다.
자신이야말로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인재라고 확신하는 만수는 점점 뒤틀린 결심을 하게 된다.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는 것. 그는 가짜 구인 광고를 내고, 자신보다 능력 있고 젊고 잘생긴 지원자들을 하나씩 확인한 뒤 이들을 차례로 제거해나가기 시작한다. 무력감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경쟁자들을 살해하는 만수의 모습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도 균열이 번지기 시작한다. 결국 만수는 그토록 원하던 자리를 손에 넣고 가정도 지켜내지만, 그 대가로 어린 아들에게마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아들이 우연히 진실의 흔적을 목격하려는 순간, 만수는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돼지였다고 둘러대며 이야기는 씁쓸하게 막을 내린다.
리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감정은 통쾌함이 아니라 불쾌함에 가까웠는데, 이건 이 영화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의도한 효과라고 생각한다. 좋았던 점부터 말하자면,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압도적이었다. 특히 이병헌은 실직이라는 좌절과 극단적인 선택 사이에서 흔들리는 만수의 내적 고통과 서서히 번져가는 광기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처음에는 그저 무력한 가장이었던 인물이 점점 자신의 범행을 스스로에게 정당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우습다가도 소름 끼치는 묘한 경험이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상징으로 가득한 연출도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이미지와 소품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만수의 심리와 이 영화가 말하려는 사회 비판을 계속해서 은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 가장 크게 걸렸던 건 몰입의 문턱이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 해도 평범한 가장이 경쟁자를 살해하겠다는 결심에 이르는 과정이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졌고, 그 때문에 초반부에는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기가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걸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애초에 뿌리부터 그리 선하지만은 않았던 인물이 벼랑 끝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면 납득이 가는 지점도 있지만, 그 개연성을 관객에게 충분히 설득시키기보다는 다소 빠르게 다음 단계로 건너뛰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결말 역시 통쾌한 카타르시스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찝찝함과 불편함이 오래 남는 엔딩인데, 이걸 단점이라고 해야 할지 이 영화의 의도된 효과라고 해야 할지는 보고 나서도 한참을 곱씹게 됐다. 확실한 건, 보고 나서 쉽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의 반응이 크게 갈리는 영화이기도 한데, 이는 자극적인 소재에 비해 재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시작한 가장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와 전개를 가지지만, 그 과정은 관객이 느끼기에 통쾌함이나 카타르시스가 있기보단 느리고 상징적인 감정변화와 사건전개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게 될 수 있다. 이때문에 실제로 관객들에게 비교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앗다.
주제와 해석
이 영화의 제목 '어쩔수가없다'는 그 자체로 핵심적인 해석의 열쇠다. 이 말은 원래 만수가 해고를 통보받을 때 회사로부터 들었던 말이지만, 이후 영화 내내 만수 스스로가 자신의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마다 되뇌는 일종의 주문이자 자기합리화의 언어로 뒤바뀐다. 마침표로 끝나는 이 평서문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 오히려 관객을 향한 물음표로 되돌아온다. 정말로 어쩔 수 없었는가? 실직이라는 현실 앞에서 살인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만수 개인의 문제인지, 아니면 만수와 같은 사람들을 대량으로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현대 산업 구조와 무한 경쟁 사회 전체의 문제인지, 영화는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려놓는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지점은 해고와 함께 해체되는 것이 단순히 만수의 소득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 그 자체라는 데 있다. 가장, 남편, 아버지라는 사회적 역할이 실직 한 번으로 통째로 흔들리는 모습은, 단순한 생계의 문제를 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손쉽게 '쓸모'와 '자리'로 환산되는지를 보여준다. 만수가 경쟁자들을 제거해가며 얻으려 했던 건 결국 고작 제지 공장의 평범한 일자리 하나였다는 사실은, 그가 지불한 도덕적 대가와 극명한 불균형을 이루며 이 영화의 블랙코미디적 정서를 완성한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범죄마저 서슴지 않는 만수의 모습에서 관객은 웃픈 공감과 동시에 혐오를 함께 느끼게 되는데, 이 양가적인 감정이야말로 박찬욱 감독이 정확히 노린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애라는 명분 역시 이 영화가 파고드는 중요한 주제다. 만수는 시종일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만, 정작 그 가족을 지키는 과정에서 그는 아내와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마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이 오히려 가족 안에 균열과 기만을 심는 역설적인 결말은, 가족애가 때로는 얼마나 손쉽게 자기 파괴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소비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그리는 동시에, 그 개인을 그렇게 만든 사회 구조에 대한 질문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며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