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오펜하이머' 줄거리
이론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나치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미 육군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맷 데이먼)에 의해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발탁된다. 그는 뉴멕시코의 외딴 사막 로스앨러모스에 세계 각지의 최고 과학자들을 끌어모아 극비 연구소를 세우고,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핵분열 기술을 실제 무기로 완성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1945년 7월, 인류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가 성공하고, 오펜하이머와 동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힘 앞에서 환희와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이후 이 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실제로 투하되며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오펜하이머는 그 이후 자신이 만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이야기를 두 개의 시간선으로 교차시켜 전달한다. 컬러로 촬영된 '핵분열' 파트는 오펜하이머 본인의 주관적 시점으로, 그가 전쟁 이후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며 냉전 시대 매파 세력과 충돌하다가 결국 1954년 청문회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의혹 속에 보안 인가를 박탈당하는 과정을 그린다. 흑백으로 촬영된 '핵융합' 파트는 오펜하이머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은 정치인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시점으로, 그가 오펜하이머를 실각시키는 데 관여했다는 사실이 훗날 자신의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오펜하이머가 과거 아인슈타인과 나눴던 대화가 드러나는데, 그는 핵실험이 성공하기 전 자신들이 만든 연쇄 반응이 대기 전체에 불을 붙여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실제로 했었고, 그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실험을 강행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영화는 끝난다.
리뷰
<오펜하이머>는 세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법정 청문회와 정치적 암투를 중심에 두고도 단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정말 놀라운 각본과 편집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가장 좋았던 지점은 역시 트리니티 실험 장면이다. 화면 가득 번지는 섬광 이후 몇 초간 이어지는 완전한 침묵, 그리고 뒤늦게 밀려오는 굉음은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사운드 디자인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소리를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그 파괴력을 더 압도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연출이 정말 탁월했다. 루드비히 고란손의 음악 역시 극 전체를 팽팽하게 조율하는데, 특히 청문회 장면에서 점점 고조되는 현악기 사운드는 대사 없이도 오펜하이머가 느끼는 압박감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시킨다.
킬리언 머피의 연기도 이 영화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그는 대사를 많이 쏟아내지 않으면서도 눈빛만으로 천재의 확신, 성공 이후의 공허함, 그리고 서서히 잠식되는 죄책감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낸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하는 스트로스 역시 인상적인데, 그동안 아이언맨으로 익숙했던 그가 이렇게 옹졸하고 치밀한 정치인을 연기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영화가 다루는 인물과 사건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특히 중반부 청문회 장면들에서는 정보량이 지나치게 밀도 높게 몰아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 정치적 입장을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면 몇몇 장면에서는 서사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또한 오펜하이머의 연인이었던 진 태틀록(플로렌스 퓨)과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 서사적으로 꼭 필요한 분량 이상으로 소비된다는 인상도 있었는데, 이 부분이 다른 서사 대비 다소 붕 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왜 히로시마의 참상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에서는 원자폭탄이 실제로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단 한 장면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강연장에서 환호하는 군중 앞에 섰을 때 그의 시야에 스치는 환각, 이를테면 발밑에서 재로 흩어지는 살갗이나 눈부신 섬광에 타들어가는 얼굴 같은 파편적인 이미지로만 그 참상을 암시한다. 실제 피해자들의 모습이나 도시가 파괴되는 장면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선택을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이 영화가 철저히 오펜하이머라는 한 인물의 주관적 시점에 갇힌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가 직접 목격하지 못한 참상을 임의로 재현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정직한 연출이라고 평가한다. 오펜하이머 본인도 그 현장을 직접 보지 못했고, 오직 보고서와 사진, 그리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만 그 결과를 마주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시점 자체가 그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소비하게 만들며, 가해국의 과학자가 느끼는 내면의 죄책감에만 서사의 무게를 지나치게 실어준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침묵이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 침묵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라는 질문이야말로,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계속 남는 가장 무거운 여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