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줄거리
미국 텍사스의 황량한 사막 한복판,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의 용접공 르웰린 모스 는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중, 마약 조직원들이 총격전 끝에 모두 몰살당한 처참한 범죄 현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곳을 조사하던 모스는 주인 없는 트럭에서 무려 200만 달러가 든 가방 을 손에 넣게 되고, 한순간의 욕망으로 그 돈을 챙겨 달아나면서 비극의 서막이 열립니다.
하지만 모스가 현장에 남긴 사소한 단서와 돈가방에 숨겨져 있던 추적 장치 때문에, 마약 조직이 고용한 냉혹한 살인마 안톤 시거 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단발머리에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안톤 시거는 자신만의 기괴한 철학과 동전 던지기로 타인의 생사를 결정하는 인물로, 산소통을 개조한 도축용 공기총을 들고 모스의 행방을 피도 눈물도 없이 추적합니다. 모스는 베트남전 경험을 살려 영리하게 도망치며 반격을 시도하지만, 안톤 시거라는 점점 더 모스의 목을 조여옵니다.
한편, 이 참혹한 연쇄 살인과 추격전을 뒤쫓는 늙은 보안관 에드 톰 벨 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마을의 치안을 지켜온 벨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상식과 규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살인마 안톤 시거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마주하며 깊은 무력감과 환멸을 느낍니다.
영화는 관객의 예상을 깨는 충격적인 전개로 이어집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모스는 결국 안톤 시거가 아닌 또 다른 마약 조직원들에게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돈가방은 다시 안톤 시거의 손에 들어갑니다. 은퇴를 결심한 보안관 벨이 자신이 꾼 기묘한 꿈 이야기를 독백으로 전하며, 세상의 잔혹함과 변해버린 시대 앞에서의 쓸쓸한 한계를 고백하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됩니다.
해석
이 독특한 제목은 원래 20세기 아일랜드의 거장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가 1928년에 발표한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 의 첫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저것은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이 구절의 '노인'은 나이에 걸맞은 경험과 지혜를 가진 현명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현실은 우연한 사건으로 인생이 크게 흔들리고,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일어나기도 하는, 거대한 부조리오 혼돈의 세상입니다.
즉 제목은 노인(지성인)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없고, 혼돈으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이 혼돈의 화신은 작중 안톤 쉬거라는 냉혈한 사이코패스로 표현됩니다. 안톤 쉬거라는 존재는 아주 평범한 사람도 동전 던지기로 간단히 죽여버리며, 그를 쫒는 보안관은 이 이해할 수도 없는 행위를 마주합니다. 그러한 안톤 쉬거는 결말에서 예측하지 못한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하는 듯 그조차도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양심적인 인물인 보안관 에드 톰 벨도 결국 유의미한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영화는 끝납니다.
메마른 텍사스 황야같은 건조한 분위기의 영화는 차갑고 혼란스러운 사회를 표현하며 시작부터 결말을 향해 나아갑니다.
리뷰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화려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잔인함 없이도 관객의 숨통을 완벽하게 쥐고 흔드는, 스릴러 장르의 마스터피스 입니다. 극장에 불이 꺼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기분 좋은 불쾌감과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점은 영화 내내 배경음악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 는 사실입니다. 흔히 스릴러 영화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나 쿵쾅거리는 비트가 이 작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황량한 텍사스 사막의 바람 소리, 모텔 복도를 걸어오는 나직한 발자국 소리, 그리고 안톤 시거가 들고 다니는 산소통의 스산한 공기 흡입음뿐입니다. 사운드의 미니멀리즘이 오히려 사실성과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모스와 함께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독보적인 분위기를 창출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단연 영화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빌런으로 꼽히는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역) 의 존재감에서 나옵니다. 단발머리를 한 채 감정 없는 눈빛으로 타인의 목숨을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는 그의 모습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공포스럽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안톤 시거와 베트남전 참전 용사 특유의 노련함으로 흔적을 지우며 도망치는 모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은 장르적인 쾌감을 아주 진하게 전달합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감이 러닝타임 내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최고의 오락적 재미를 보장합니다.
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감상하기 위한 핵심 포인트는 바로 "과연 주인공이 살아남아 돈을 차지할 수 있을까?" 라는 기존 영화의 공식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우고 보는 것 입니다. 영화는 관객이 기대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영웅 서사나 통쾌한 복수극을 철저하게 배신합니다. 정의로운 보안관은 범인의 꼬리조차 잡지 못하고 그저 벌어지는 참극 뒤늦게 찾아와 보게되는, 어쩔 도리 없는 이 상황을 그저 쫒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영리하게 도망치던 주인공의 운명은 결국 허무하게 꺾입니다. 이 불조리하고 냉혹한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믿고 있던 세상의 안전망과 규칙들이 얼마나 유약한 것인지 깨닫게 되며 서늘한 감상에 젖어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