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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랑켄슈타인> 줄거리, 리뷰, 원작

by pressp 2026.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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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1818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고딕 SF 공포 영화다.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를 통해 자신만의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을 구축해온 델 토로 감독이 오랫동안 꿈꿔온 프로젝트를 마침내 완성한 작품으로, 오스카 아이작과 제이컵 엘로디가 각각 창조자와 피조물을 연기했다. 

<프랑켄슈타인> 줄거리-신이 되려 한 자, 괴물이 될지니

천재적이지만 오만한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오스카 아이작)은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위험한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엄격하고 억압적인 아버지 레오폴드 남작(찰스 댄스) 밑에서 자란 그는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과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광기 어린 집착을 동시에 품은 채, 결국 금기시된 실험을 통해 하나의 피조물(제이컵 엘로디)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의 낯선 외형과 존재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 빅터는 그를 창조하자마자 외면하고 버리게 되고, 이 무책임한 선택은 창조자와 피조물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비극의 시작점이 된다.

영화는 북극의 얼음 위에서 빈사 상태로 발견된 빅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액자식 구조로 전개되며, 크게 '빅터의 이야기'와 '피조물의 이야기'라는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 사건을 각기 다른 시점에서 조명한다. 버림받은 피조물은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며 점차 고통과 분노를 학습해가고, 자신을 만들고 저버린 창조자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쫓고 쫓기는 두 존재의 여정 속에서, 영화는 책임을 회피한 창조주와 태어나기를 원치 않았던 피조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회화 같은 영상미 속에 담긴 인간성에 대한 질문

고전 명작 '프랑켄슈타인'을 훌륭하게 재해석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괴물이 쫒아오는 공포스럽고 고립된 상황에서 영화가 시작되고 의문의 사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쫒아오는 괴물의 정체와, 그 창조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이 남자의 용기와 재능을 보여주면서도 그의 괴물같았던 행위도 드러난다. 이후 괴물이 나타나고, 그가 인간의 인간의 언어를 쓰며 돌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분위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괴물의 '인간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누가 괴물인지,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결국 자신과 창조자의 관계에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그 후 결국 용서로 끝나는 영화는, 우리에게 완벽한 결말을 보여준다. 

영상미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델 토로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손꼽히는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심하게 공들인 미술과 의상, 필름의 질감을 살린 조명과 그림자 연출은 마치 한 편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판의 미로>와 <셰이프 오브 워터>로 이어지는 델 토로 특유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서정적인 감성이 집대성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작곡한 음악 역시 공포보다는 서정성에 무게를 둔 선율로 영화 전반의 비극적 정서를 뒷받침한다. 다만 일부 평론가들은 원작을 향한 감독의 애정이 짙은 만큼 다소 느린 호흡과 무거운 주제 의식이 관객에 따라 호불호를 가를 수 있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프랑켄슈타인>은 공개 직후부터 원작을 훌륭하게 재해석한 고딕 호러로 극찬받았다. 로튼 토마토에서는 평론가 점수 85%, 관객 점수 94%의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델 토로 감독이 영화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괴물 중 하나에서 인간성을 발견해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특히 제이컵 엘로디는 기존에 맡아온 배역들과는 완전히 다른 피조물 역할을 위화감 없이 소화해냈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오스카 아이작 역시 야망과 죄책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빅터를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델 토로가 다시 쓴 '탕자 아버지'의 이야기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원작을 충실히 따르는 대신, 여러 지점에서 과감한 변주를 시도한다. 가장 큰 차이는 빅터와 피조물의 초기 관계다. 원작 소설에서 빅터는 실험이 성공해 크리처가 눈을 뜨는 순간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혀 곧바로 현장에서 도망치고, 이후 괴물이 죽었으리라 생각하며 한동안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지낸다. 반면 영화 속 빅터는 되살아난 피조물과 한동안 함께 지내며 돌봐주기까지 하는데, 이런 변화는 이후 그가 결국 피조물을 매몰차게 저버리는 선택을 훨씬 더 무겁고 잔인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원작에서 빅터가 크리처의 배우자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수락했다가 파괴해버리는 유명한 에피소드 역시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이미 한 번 창조와 유기를 반복한 자신에 대한 혐오와 후회가 빅터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설정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영화에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라는 원작의 상징적인 존재가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에 있다. 델 토로 감독은 이 영화의 작업 코드명을 '탕자 아버지(The Prodigal Father)'로 붙였는데, 이는 잘못을 저지르고 돌아온 자식을 아버지가 용서한다는 성경 속 '탕자의 비유'를 뒤집어, 잘못을 저지른 쪽을 오히려 '아버지'인 빅터로 설정했다는 뜻이다. 감독 스스로도 이 작품을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아들이 훗날 자신도 아버지가 되어 그 상처를 대물림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원작이 창조자의 오만과 과학 윤리에 대한 경고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여기에 더해 '창조'가 아니라 '양육'의 책임이라는 현대적인 질문을 겹쳐 놓은 셈이다. 결말 역시 크게 갈리는데, 원작에서는 결국 창조자와 피조물 모두가 파국을 맞이하며 서로에게 매인 채 죽어가지만, 영화는 피조물이 죽어가는 빅터를 끝내 용서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된다. 학대와 상처의 고리를 끊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이 결말은, 관객에 따라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19세기 소설을 21세기의 시선으로 다시 쓴 델 토로만의 해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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