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결말
레너드 셸비(가이 피어스)는 한때 보험 조사관이었지만, 아내가 살해당한 그날 밤 침입자에게 머리를 가격당하며 새로운 기억을 10분 이상 저장하지 못하는 순행성 기억상실증을 갖게 됐다. 그는 아내를 죽인 범인 '존 G'를 찾아 복수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붙든 채 살아간다. 매 순간 방금 전의 일조차 잊어버리는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문신으로 몸에 새기고, 폴라로이드 사진 뒷면에 메모를 남기고, 낱장의 메모지에 단서를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에만 의지해 수사를 이어간다.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서술 구조다. 컬러로 촬영된 장면들은 시간 순서상 뒤에서 앞으로, 즉 결말에 해당하는 사건부터 시작해 점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배열된다. 반대로 중간중간 삽입되는 흑백 장면들은 정상적인 시간 순서로 진행되며, 레너드가 전화로 자신의 상황과 과거 보험사 시절 다뤘던 '새미 잰키스'라는 남자의 사례를 회상하는 내용을 담는다. 이 두 흐름은 영화가 끝날 무렵 하나로 합쳐진다. 극이 진행되며 레너드는 부패한 경찰 테디(조 판톨리아노)와 바텐더 나탈리(캐리 앤 모스)를 만나는데, 두 사람 모두 기억을 잃은 그의 상태를 이용해 각자의 목적을 위해 그를 조종한다. 그리고 영화의 진짜 반전은 마지막에 드러난다. 레너드는 사실 1년도 더 전에 진짜 범인을 이미 찾아내 죽였고, 그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테디를 새로운 '존 G'로 만들어 반복해서 복수극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이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으면서도, 진실을 기록해두는 대신 스스로 증거를 없애고 다시 테디를 쫓기로 선택하며 영화는 끝난다.
해석과 리뷰
<메멘토>를 처음 봤을 때의 감상과 다시 봤을 때의 감상은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서사 구조 그 자체다. 시간을 거꾸로 배치한 편집은 단순히 신기한 형식 실험에 그치지 않고, 레너드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 즉 아무런 맥락도 없이 매 순간을 낯설게 받아들여야 하는 그 혼란과 불안을 관객이 그대로 체험하게 만든다. 이 구조 덕분에 우리는 레너드와 똑같은 입장에서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의심하고, 그가 내린 판단이 맞는지 계속 되짚어보게 된다. 가이 피어스의 연기도 훌륭하다. 절박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위험한 자기기만까지, 그는 대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층위를 표정과 몸짓으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다.
가장 좋았던 지점은 역시 결말의 반전이다. 단순히 놀랍기만 한 반전이 아니라, 그 반전이 영화 전체가 던지는 질문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더 인상 깊었다. 레너드가 진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지워버리고 다시 존재하지도 않는 표적을 향해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이 왜 때로는 편안한 거짓말을 진실보다 더 필요로 하는지를 소름 끼치도록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이 영화는 단 한 번의 관람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역순 구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인물 관계나 사건의 인과를 따라가는 데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 자체보다 구조를 해독하는 데 더 신경을 쓰게 되는 순간들도 있다. 또한 나탈리와 테디가 레너드를 이용하는 동기가 다소 서둘러 설명되는 감이 있어서, 두 사람의 캐릭터가 반전의 재미에 비해 다소 도구적으로 소비된다는 인상도 든다. 저예산 영화 특유의 거친 질감이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건 오히려 이 영화가 가진 즉흥적이고 날것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세 번째 주제 — 새미 잰키스는 사실 레너드 자신이었을까
영화 곳곳에 삽입되는 새미 잰키스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레너드가 보험사 시절 조사했던 사례처럼 등장한다. 새미 역시 레너드와 똑같은 순행성 기억상실증을 앓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아내에게 반복적으로 인슐린을 투여해 결국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 속 몇몇 장면에서 새미의 얼굴 자리에 레너드 자신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연출이 등장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레너드의 아내가 실제로는 그날의 습격에서 살아남았을 가능성, 그리고 레너드 본인이 자신의 기억상실 때문에 아내에게 반복적으로 인슐린을 투여해 실수로 죽음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단서들이 흩어져 있다.
이 해석이 맞다면, 새미 잰키스의 이야기는 레너드가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죄를 타인의 사례로 치환해 반복적으로 되뇌어온, 일종의 자기방어적 기억 조작이라는 뜻이 된다. 그는 아내를 죽인 외부의 범인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범인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영화는 이 해석이 사실인지 아닌지 끝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모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견딜 수 없는 진실을 피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인지, <메멘토>는 그 질문을 끝까지 열어둔 채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