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전편으로부터 16년이 흐른 시점, 한노(폴 메스칼)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남자가 아프리카 누미디아 왕국에서 아내와 평화롭게 살고 있다. 하지만 로마 장군 마르쿠스 아카키우스(페드로 파스칼)가 이끄는 군대가 누미디아를 침공하면서 그의 아내는 목숨을 잃고, 한노는 포로로 붙잡혀 로마로 끌려간다. 그는 검투사 양성소를 운영하며 무기상으로도 활동하는 야심가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에게 팔려가고, 마크리누스는 한노의 정체가 사실 루키우스, 즉 전편 주인공 막시무스와 루실라(코니 닐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당시 로마는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쌍둥이 황제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헤킹거)가 다스리고 있다. 한노는 원숭이 무리와의 사투, 상어가 풀린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모의 해전 등 점점 더 잔혹해지는 경기를 거치며 검투사로서 명성을 쌓아간다. 한편 어머니 루실라는 장군 아카키우스와 함께 폭정을 끝내고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을 되살리려는 비밀 계획을 꾸미지만, 이를 눈치챈 마크리누스에 의해 아카키우스는 처형당하고 루실라는 체포된다. 결국 루키우스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막시무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밝히고, 검투사들과 군대를 규합해 반란을 일으킨다. 그 사이 마크리누스는 두 황제를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 카라칼라가 게타를 죽이게 하고, 이어 근위대를 부추겨 카라칼라마저 제거한 뒤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려 한다. 어머니 루실라가 카라칼라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은 루키우스는 콜로세움에서 마크리누스와 최후의 결투를 벌여 그를 쓰러뜨리고,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 앞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꿈꿨던 공화정의 이상을 다시 외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리뷰
<글래디에이터 2>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영화가 전편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번에도 로마 제국의 장대한 스펙터클을 화면 가득 채우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지만, 러셀 크로우의 막시무스가 가졌던 단단한 카리스마와 절제된 비극의 정서를 폴 메스칼의 루키우스에게서 똑같은 무게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가장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단연 콜로세움에 물을 채우고 상어까지 풀어놓은 모의 해전 시퀀스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장면이 주는 시각적 충격과 스케일만큼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물 위에서 배와 배가 부딪히고 그 사이로 상어 지느러미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콜로세움이라는 공간 자체가 얼마나 잔인하고 화려한 스펙터클의 무대였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해줬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지점은 단연 덴젤 워싱턴의 연기다. 그가 연기하는 마크리누스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노예 신분에서 시작해 로마의 권력 구조 자체를 냉소하며 스스로 황제 자리까지 노리는 야심가로, 극 중 가장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의 존재감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아쉬운 점도 분명했다. 전편이 막시무스 개인의 상실과 복수라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감정선으로 관객을 몰입시켰다면, 이번 작은 황실 음모, 원로원의 이상, 검투사의 성장, 모자 관계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번에 욱여넣으려다 보니 각각의 서사가 충분히 무르익지 못한 느낌이었다. 특히 후반부 전투 장면들은 CG에 지나치게 의존한 티가 나서, 전편이 가졌던 흙먼지 날리는 거친 사실감에는 미치지 못했다. 폴 메스칼은 육체적으로는 확실히 인상적인 존재감을 보여줬지만, 극 후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는 러셀 크로우만큼의 무게감을 실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덴젤 워싱턴의 마크리누스, 사실은 실존 인물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덴젤 워싱턴이 연기한 마크리누스라는 인물이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 로마사에는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마크리누스라는 인물이 존재했는데, 그는 노예 출신이 아니라 근위대장 출신이었지만 실제로 서기 217년 황제 카라칼라를 암살하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던 실존 인물이다. 즉 영화는 실제 역사 속에서 "황제를 몰아내고 스스로 권좌에 오른 인물"이라는 뼈대만 가져와, 완전히 새로운 배경과 서사를 입힌 셈이다.
다만 영화가 그리는 시대와 실제 역사적 마크리누스가 활동했던 시기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간극이 있고, 극 중 쌍둥이 황제 설정이나 검투사 출신이라는 배경 등은 모두 창작된 요소다. 이런 자유로운 각색을 두고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실제 역사 속에서 신분과 권력의 경계를 뛰어넘었던 인물의 그림자를 가져와, 완전히 새로운 픽션의 악역이자 다크호스로 재창조한 방식이 이 영화 나름의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로마사를 잘 아는 관객에게는 "저 이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라는 소소한 발견의 재미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는 순수하게 새로운 악역으로서의 매력을 동시에 전달하는 지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