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장의 8년 만의 귀환
이창동 감독이 2018년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는 신작 <가능한 사랑>이 공개 일정을 확정했다. 오는 9월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먼저 개봉하고, 이후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된다. 흥미로운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임에도 스트리밍보다 극장 개봉을 먼저 택했다는 점인데, 이는 내년 3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후보 출품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프랑켄슈타인>,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아이리시맨> 등을 극장에서 먼저 선보였던 넷플릭스의 전례를 이번에도 따르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이창동 감독이 베니스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린 건 2002년 <오아시스> 이후 무려 24년 만이라, 황금사자상 도전 자체가 하나의 뉴스가 되고 있다. 여기에 제51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도 초청되면서, 국내 개봉 전부터 이미 세계 영화계의 시선을 붙잡은 상태다.
포스터·캐스팅 분석 — 아직 예고편은 없지만
아쉽게도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정식 예고편 영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지난주 공개된 공개일 발표 포스터 한 장이 유일한 이미지 단서인데, 이것만으로도 곱씹을 거리가 상당하다. 포스터에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하늘과 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아래 마주 선 미옥(전도연)과 예지(조여정)의 모습이 담겼다. 예지는 카메라를 들고 있고, 그런 예지를 바라보는 미옥 사이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흐른다. 두 사람이 극 중 다큐멘터리 감독과 피촬영자의 아내로 처음 마주하는 관계라는 걸 감안하면, 이 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영화 전체를 관통할 '시선과 응시'의 관계가 암시되는 듯하다.
캐스팅 조합 자체가 이미 상당한 '예고편' 역할을 한다.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제6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감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배우다. 설경구 역시 <박하사탕>, <오아시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장편 협업으로, 감독과 배우가 함께 나이 들어가며 쌓아온 신뢰가 스크린에 어떻게 드러날지 궁금해진다. 특히 전도연과 설경구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 <길복순>에 이어 이번이 무려 네 번째 만남이라, 부부 역할을 맡은 두 사람의 합은 이미 검증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조인성과 조여정은 이번이 이창동 감독과 첫 작업이다. 조인성은 <호프>, <휴민트>에 이어 쉼 없는 필모그래피를 이어가는 중인데, 액션 대작들을 연달아 소화한 뒤 이창동 감독의 정극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기생충>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조여정 역시 최근 <히든페이스>, <좀비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어온 만큼,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부부 중 한 축을 어떻게 채워낼지가 관전 포인트다. 두 사람 모두 감독과는 처음이지만, 서로와는 영화에서 만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 역시 눈에 띈다.
시놉시스 — 두 부부, 다큐멘터리로 얽히다
<가능한 사랑>은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두 부부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호석은 해고 노동자이고, 전도연이 연기하는 미옥은 그의 아내다. 조여정이 연기하는 예지는 해고 노동자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며, 조인성이 연기하는 상우는 그녀의 남편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게 된 이 두 부부는, 서로 다른 삶의 궤적과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욕망을 마주하게 되면서 각자의 일상에 균열을 겪는다. 알려진 바로는 실제 사회적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야기라고 하며, 각본은 이창동 감독이 전작 <버닝>을 함께 집필했던 오정미 작가와 다시 공동으로 작업했다.
기대감 — 왜 이 영화를 기다리게 될까
가장 먼저 기대되는 건 이창동 감독 특유의 시선이다. 그는 그동안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거치며 한국 사회의 계급, 폭력, 상실을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선을 통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작품 역시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라는 설정에서부터, 계급과 시선의 문제를 다시 한번 정면으로 다룰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특히 '촬영하는 자와 촬영당하는 자', '기록하는 삶과 기록되는 삶' 사이의 권력관계를 어떻게 그려낼지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배우들의 조합도 기대를 키우는 요소다. 감독과 이미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춰본 전도연·설경구 콤비의 관록과, 처음으로 이창동 월드에 발을 들이는 조인성·조여정의 신선한 에너지가 어떻게 어우러질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여기에 164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감독이 이번에도 인물들의 감정을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쌓아 올리는 특유의 호흡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베니스 경쟁 부문 초청이라는 성과 자체가 기대를 높인다. 이창동 감독이 24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황금사자상 레이스인 만큼, 국내 개봉에 앞서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될 반응과 평가도 관심 있게 지켜볼 부분이다. 아직 예고편도, 구체적인 스틸컷도 많이 풀리지 않은 상태라 궁금증은 더 큰데, 9월 베니스와 토론토를 거쳐 국내 극장에 걸리기까지 남은 두 달 동안 어떤 이미지와 정보들이 조금씩 공개될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